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4:22


<감독 미하엘 하네케>는 하네케의 1992년 작품 <베니의 비디오>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 작품은 감독으로서의 하네케를 전 유럽에 알린 작품으로, 영화가 가진 속성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베니의 비디오>와 함께 보이는 인터뷰에서 하네케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로써 영화를 만든다” 그렇다면 그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미하엘 하네케>를 보는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네케란 사람은 어떤 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네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믿는 진실이란 것에는 언제나 허위와 거짓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하얀 리본>에서 그는 ‘아이들은 선한 존재이며,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깨고자 한다. 그의 영화 속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독재자와도 같이 자식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런 불편한 묘사는 부모만을 향하지 않는다. 하네케가 그리는 아이들 역시 선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하네케의 아이들은 음험한 악행의 공모자이며, 의심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진실에 덧씌워진 허위와 거짓이 벗겨졌을 때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또한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명확한 진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믿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 때문에 진실이라는 것은 단어가 가진 의미는 달리 누군가에겐 진실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거짓일 수 있는 모순성을 가지고 있다. 하네케가 <늑대의 시간>에서 그리는 세상은 그런 불안정한 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질서가 모두 무너진 곳이다. 그렇게 지옥 같이 변한 세계는 우리 모두가 선인이며 악인임을 드러낸다. 마치 진실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일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네케는 이자벨 위뻬르와 작업한 <피아니스트>를 발표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영화가 외설이기를 바란다” 적지 않은 하네케의 영화들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은 마조이스트적 기질을 드러내고, <퍼니 게임>은 영화 내내 잔인한 폭력을 전시함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통념적으로 합의한 윤리의 기준이 있다고 할 때, 하네케는 자신의 영화들로 그 기준 너머를 비추려 한다. 바로 그곳에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의 변태적 성적 욕망은 사실 성욕의 분출이라기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그녀는 자신을 억압하는 어머니 때문에 정상적인 소통의 방법을 익히지 못한 인물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 밖으로 꺼내어질 때 극단적인 형태를 띄게 된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피아니스트>에서는 마조이스트적 기질로, 그리고 <하얀 리본>에서는 공공연하고 은밀한 악행으로 묘사된다.



<퍼니 게임>의 극단은 더욱 더 노골적이다. 하네케는 <퍼니 게임>에서 잔인한, 너무나 잔인한 폭력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의 주체가 누구이냐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변태적 성욕의 주체는 분명히 영화 속 등장인물이었다. 하지만 <퍼니 게임>의 폭력의 욕망의 주체는 모호하다. 하네케는 <퍼니 게임> 속 악인의 손에 리모컨을 쥐어주고는 영화의 시간을 조작하게 한다. 영화의 시간을 조작하는 것은 본래 관객의 몫이다. 하네케는 그 관객의 몫을 빼앗아 등장인물에게, 그것도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악인에게 쥐어준다. 리모컨을 쥔 악인은 <퍼니 게임>의 세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영화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영화 바깥 관객과 같은 위치에 선다. 그리고 다른 영화들의 악인들이 결국에는 악행에 대한 벌을 받는 데 비해, <퍼니 게임>의 악인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여유롭게 다음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 카메라를 인지하고 바라보는 인물의 얼굴을 통해 하네케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길 원하는 게 이런 폭력들이 아닌가’ 하네케의 눈에 관객은 영화 속 선인의 편이 아니라 악인의 편에 더 가까이 있는 자들이다.

 

하네케는 예술이란 여러 가지 화려한 장식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간결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네케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잔인한 표현들도 하네케가 가진 미학에 대한 주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네케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 외에 어떤 미사여구도 덧붙이지 않는다. 최신작인 <아무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사랑과 죽음을 표현할 때조차도 건조하다. 보통의 영화에 덧붙여지는 장식들은 하네케가 보기에 진실을 가리고 있는 허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걷어내고 오로지 진실만을 보여주려 한다.

 

하네케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믿는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덮고 있는 거짓을 걷어내길 원한다. 하네케에게 있어 진실은 바로 거짓을 벗겨내는 행위 그 자체이다. 하네케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형식적 실험을 하고,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이미지를 전시하는 것은 모두 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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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4:19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마스터>는 ‘가족과 기억’ 이라는 테마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마스터>의 주인공인 프레디는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다. 이 영화가 비록 1940년대와 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이라크전에도 많은 군인들이 참전했고, 그들이 미국에 돌아와서 겪을 수 있는 부적응의 문제를 이 영화와 연관지어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스터>에서 짚어볼 만한 장면들이 있다. 첫 번째가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프레디가 과일을 깎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마치 프레디가 자해를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 장면은 프레디가 겪고있는 내면의 갈등이 충동적 자살,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로 프레디가 해군들과 레슬링을 하는 장면 역시 짚어볼만 하다. 위험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프레디는 성적으로 일관된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작가로 활동할 때의 프레디가 여자 모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영화 후반부 마스터와의 관계 등 영화는 프레디의 섹슈얼리티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시기의 프레디가 가족사진을 다루는 태도 역시 주목해봐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는 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대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직접적이든 간적접적이든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을 것이고, 이는 사회의 보수화,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가족사진을 찍는 프레디의 모습은 당시 사회의 반영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프레디는 정상적인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다.

 

알콜중독인 아버지, 정신병원에 수감된 어머니, 그리고 고모와의 근친상간의 경험. 게다가 그 자신은 비록 전쟁 중이긴 하지만 살인을 했다. 이러한 자기모순적인 모습들과 불안정한 당시의 시대상은 결국 프레디를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상황에서 프레디는 마스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스터는 ‘프로세싱’ 의식을 통해 프레디가 억제하고 있던 내면의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극복하게끔 만든다. 프레디는 이 의식을 통해 재탄생하게 되고, 동시에 마스터와 프레디 사이의 유사 부자관계 역시 이때 만들어진다.



프로세싱 장면에서 한 가지 더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도리스에 대한 언급이다. 프레디에게 있어 도리스는 자신을 억압하는 트라우마의 반대편에 있는 아주 결백한 순간들, 자신이 상처 받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프레디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도리스에게로 회귀하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스터>는 끝내 도리스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는 프레디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재미있게도 마스터와 프레디, 두 사람의 유사 부자관계에 생기는 균열 또한 프로세싱 의식에서 비롯한다. 맹신에 가깝게 마스터를 신뢰하던 프레디의 태도는 프로세싱에 대한 불쾌한 비판을 겪은 뒤 조금씩 흔들린다. 자신이 의지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생각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비윤리적인 상상으로까지 이어진다. 감옥에 갇힌 프레디는 마스터에게 반항을 하는데, 이때 그의 반항과 분노는 정말로 마스터를 향한다기보다는 마스터의 프로세싱을 의심하고, 그의 권위를 부정하는, 그럼으로써 프레디를 보호하고 있는 세상을 무너뜨리는 외부의 시선을 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프레디의 출감 이후 마스터는 다시 한 번 프레디에게 프로세싱을 시도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긴 시간을 들여 프레디의 두 번째 프로세싱을 묘사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프레디는 자신기 갖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필라델피아 시퀀스는 프레디가 자신이 맹신하던 마스터의 인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벽에 갇혀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사실상 <마스터>의 이야기는 이때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피닉스에서 프레디가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지는 장면은 마스터와, 마스터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인연을 끊는, 이제까지 영화가 묘사하던 프레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죽음이다.

 

영화는 마스터를 떠난 프레디가 도리스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리스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레디가 돌아가고자 하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경험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마스터라는 유사 아버지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데 실패한 프레디는 이제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전자가 불가능했던 것처럼 후자 역시 불가능한 퇴행이다. 그리고 프레디는 다시 마스터를 만난다. 하지만 이 만남은 회귀나 재결합이 아니라, 이별의 의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마지막 의식에서 두 사람은 열정적이었던,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을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어주었던 유사 부자관계의 회복을 원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이 장면은 그저 프레디와 마스터라는 특정 두 사람의 이별이 아니라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일반적인 가족의 해체라고 받아들여도 괜찮을 법하다. 하지만 프레디가 마스터를 벗어난 이후 벌이는 의례적인 정사 장면에서 보이는 마스터와의 유사성을 통해 우리는 프레디가 실은 마스터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스터>는 모래로 빚은 여성의 인형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이 모래 인형은 영화 속에서 묘사된 프레디의 인간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란 사람의 겉모습만을 흉내낸 모래 인형처럼 감정이 결여된, 그러면서 언제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이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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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4:13

우리는 흔히 까미유 끌로델이라고 하면 로댕의 연인이었던 천재적인 조각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브루노 뒤몽의 영화 <까미유 클로델>에서는 로댕의 연인인 까미유 클로델의 모습도, 조각가인 까미유 클로델의 모습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우리가 예상한 까미유 클로델을 모두 비켜간, 1915년 어느 며칠의 까미유 클로델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브루노 뒤몽은 왜 불편하게 그녀의 얼굴만 보여줬던 것일까요, 그것도 다른 미친여자들의 얼굴과 함께 말입니다.

 

영화가 윤리를 다루는 두 가지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파토스의 윤리입니다. 이를 잘 나타내는 감독은 미하엘 하네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뚜렷한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우리를 휩싸고 있는 어떤 기분·흥분·충동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악한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하네케는 파토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토스의 윤리가 있는 곳과 정반대에 ‘에토스의 윤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건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곳에서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왜 하필 나일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열렬히 사랑하던 로댕에게서 버림을 받은 까미유 클로델의 삶은 무너져버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의 배후에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로댕이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냅니다. 로댕이 자신의 앞날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누군가에 의해 계획되고, 애초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 이는 촌스러운 음모론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일종의 강박증, 분열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누이보다 조금 덜할 뿐, 나도 똑같은 광기가 있다”고 자백하는 폴 클로델 또한 거창한 가설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은 미친 여자가, 다른 한 명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됐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같은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까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는 까미유 클로델이라는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바뀔까?” 이런 의문에 사람들은 대안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질문합니다.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싶어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원리와 질서를 따를 때, 그것으로부터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면 그 이유는 영영 찾을 수 없다. 믿음은 무엇이 옳은 것이라는 판단 뒤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믿음을 가진 뒤에야 그것이(무엇이든) 옳은 것이란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기존의 원리와 질서대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멀뚱히 쳐다보면 절대로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세계는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바로 그러한 믿음의 상실입니다. 우리가 실현 가능한 것만을 꿈꿀 때 우리가 있을 수 있는 세계는 고작 우리가 이미 물려받은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브루노 뒤몽이 까미유 클로델이라는 한 명의 개인에게 이런 윤리적 자세를 묻는 것은 바로 그런 질문들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뒤몽은 왜 얼굴을 비추려 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얼굴에는 바로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의 클로즈업은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 중 가장 커다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들은 클로즈업에 열광하기도, 클로즈업을 기피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인물의 얼굴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는 겁니다.



얼굴의 의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뒤몽은 까미유 클로델의 얼굴과 정신병에 들린 여자들의 얼굴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우리가 미친 여자의 얼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의 내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까미유의 얼굴은 내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얼굴은 바로 내면을 비추는 반영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상황과 환경, 맥락에 맞춰 짓게 되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과는 상관 없이, 내가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얼굴입니다. 그런 두 번째 얼굴을 가리켜 표현의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까미유 클로델>의 미친 여자들은 첫 번째 얼굴을 가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얼굴 또한 가지지 못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얼굴은,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볼 수 있는 까미유 클로델의 얼굴입니다. 이 세 번째 얼굴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외부 환경의 맥락에서 비롯된 것 또한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게시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브루노 뒤몽은 자신의 영화에 이 게시의 얼굴을 전시하려 합니다.

 

인간의 세 가지 얼굴 안에는 각각의 윤리적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반영의 얼굴에서 우리는 냉소주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변혁을 부르짖는 운동가들에게 “어차피 안 될 거야.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거야”라며 만류하는 자들의 얼굴에서는 냉소주의적 윤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두 번째 얼굴을 하고 있는 자들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믿음과 동시에 핑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전 이 두 번째 윤리를 기회주의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무엇이겠습니까? 세 번째 얼굴을 한 이들은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그래야만 한다, 고 생각합니다. <까미유 클로델>의 폴은 ‘신이 이렇게 엉터리 같은 세상을 만들었을 리 없다. 분명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에 따라 세계를 볼 때 어쩌면 우리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과 새로운 이유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폴의 개종을 이끈 시인 랭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얼굴의 세 가지 측면과 마찬가지로 시도 세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고, 세계의 섭리에 대해서 떠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랭보는 앞의 두 가지를 모두 부정했습니다. 그는 시인은 오로지 언어를 통해 세계의 새로운 탄생을 이야기하는 선지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뒤몽은 랭보가 언어로 한 것을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합니다. 뒤몽은 자신의 영화 <까미유 클로델>에서 게시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영화에 세 가지 얼굴을 전시하고, 영화의 맨 마지막에 까미유의 얼굴을 관객과 마주하게 하면서 뒤몽 자신이 꿈꾸고 있는 새로운 윤리적 원칙을 수립하고자 하는 절망적 시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정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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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3:53


강민영: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두 분의 필리핀 감독과 한 분의 필리핀 영화평론가와 함께 필리핀 독립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거창한 주제 같지만 이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가 오가길 바란다.
70년대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한 필리핀 독립영화는 금기에 대한 도전과 표현에 대한 자유를 담는 것에 주력했다. 마누엘 콘테, 에디 로메로, 이스마엘 베르날, 키틀랏 타히믹 같은 감독들의 작업을 통해 현재에는 금기가 깨지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담는 현상이 보편화되어서 이런 성향이 약해졌다. 대신 형식의 자유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다큐멘터리와 극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것을 눈여겨 볼 수 있다. 필리핀 독립영화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시린 세노: 최근의 큰 변화는 기관의 지원금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시네마원영화제와 시네말라야영화제는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감독들에게 지원을 해준다. 지원금의 양이 늘어나다 보니 올해의 지원금이 가장 많다.

 

존 토레스: 또 하나의 요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DVD가 생기고 해적판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때문에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도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제작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날로그 방식뿐만 아니라 디지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런 부분이 영화인들에게 자유를 줬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시스템을 차근차근 밝아야만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충분히 수월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또한 관객들의 인식 변화도 있다. 사람들이 화질이 떨어지는 VCD 형식의 영화를 접하다 보니, 비교적 화질이 떨어지는 독립영화를 봐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니까 독립영화 감독들도 작업하는데 부담이 줄어들었다.

 

옥스 크루스: 특히 디지털 영화를 만들면서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마닐라 중심으로 번성했던 영화산업이 전국으로 번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닐라보다 남쪽에 있는 세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감독들과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닐라 영화제를 통해 각 지역의 감독들이 교류를 하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지방 출신의 감독들이 마닐라 출신의 감독들과 협업을 했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마닐라 출신의 감독들도 지방으로 내려가 영감을 받아 지방 출신의 영화인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디지털이란 매체에 회의를 느낌 감독들은 16mm나 35mm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자유가 다양하다 보니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영화를 만드는 자유도 생겼다.

 

강민영: 필리핀에는 피토 피토(피토: 필리핀어로 숫자7) 영화가 있다. 7일간 촬영하고 7일간 편집하는 저예산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환데, 현재도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가?

 

옥스 크루스: 피토 피토 현상은 80~90년대에 유행했는데 요즘 독립영화들의 대다수가 여전히 피토피토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필리핀 영화 제작자 중에 세 분이 유명한데, 그 중에 한 분이 만들어낸 촬영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짧은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감독들과 함께 성행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의 발견이 이 방식이 필리핀 영화계에 끼친 긍정적인 효과다. 라브 디아즈는 이 방식을 통해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라는 첫 장편을 만들었다. 또한 제프리 제투리안 등의 독립영화계의 거장들도 이 방식의 덕을 봤다. 현재에는 시네말라야영화제나 시네마원영화제에서 감독들에게 3, 4개월 이내에 작업을 끝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존 토레스: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점은 피토피토 방식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가 필름으로 작업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이 말은 편집을 전부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는 뜻이다. 시간이 짧기 때문에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다. 그리고 대형 제작사가 금전적인 지원을 했기 때문에,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흥행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가졌었다.

 

시린 세노: 이번에 상영한 내 첫 번째 장편은 시네마원영화제에서 상영해야 됐기 때문에 5개월의 시간 밖에 없었다. 작업 기간의 문제도 있지만 시네마 원 영화제의 지원금을 받게 되면 저작권이 모두 영화제로 가기 때문에 영화가 영화제에 귀속된다.

 

강민영: 그러면 영화를 만들 때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건가?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나?

 

옥스 크루스: 필리핀 독립영화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크게 2개가 있다. 앞에 말한 두 영화제다. 또한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문화예술진흥위원회(NCCA)를 통해서다. 그리고 존 토레스나 라야 마틴, 그리고 라브 디아즈 같은 경우는 해외에서 지원을 받기도 한다. 물론 적은 돈으로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만들다 보면 이 금액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집을 저당 잡힌다거나 부모에게 빚을 지곤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강민영: 2009년에 독립영화인 <존 베딩스>가 흥행했던 것을 보면, 필리핀 독립영화들이 미묘하지만 주류 영화들과 함께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 독립영화와 주류 영화와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존 토레스: 3~5프로 정도만 상업적으로 성공한다. 대부분은 극장 개봉이 힘들다. <좀배딩스>의 감독은 주류 산업 시스템에 네트워킹이 되어 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스타일 면에서나 미학적인 면에서도 상업적인 영화와 비슷한 영화다.

 

옥스 크루스: 박스오피스에 성공한 독립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다. 필리핀의 경우 예술영화관이 없기 때문에, 독립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려면 헐리우드 영화나 주류 영화와 경쟁해야 된다. 헐리우드 영화와 직접적으로 겨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영화들 상영 기회가 많지 않다.

 

정리 : 최혁규(문화연대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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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모더레이터) : 감독님은 사진과 설치 미술을 먼저 하시다가, 이번 작품이 첫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돼서 영화를 연출하게 됐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시린 세노 : 필리핀에서 영화 현장을 직접 본 뒤에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전부터 영화를 보는 걸 워낙 좋아했고, 현장의 젊고 활기찬 기운에 반했습니다. 라프디아즈 감독님과 존 토레스 감독님들이 저와 함께 일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허남웅 : <빅 보이>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요?

 

시린 세노 : 저는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필리핀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로부터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언젠가 부모님의 고향인 미도르에 직접 방문해 195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런 이야기들과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제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이런 영화가 나왔습니다.

 

관객 : 카메라를 요즘 흔히 쓰이는 디지털이 아닌 8mm 필름으로 촬영됐습니다. 이 부분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시린 세노 : 디지털과는 달리 슈퍼 8mm에는 마법 같고, 감정적인 질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기억을 다루는 이번 영화와 관련이 깊고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슈퍼 8mm를 선택했습니다.

 

관객 : 롱 테이크에 음향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시린 세노 : 사운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부분은 제 이미지만을 전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카메라 사운드를 많이 넣기도 했는데, 제가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영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영화 뒤로 숨기보다는 제가 그곳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허남웅 : 아이가 물건을 훔쳐서 도망갈 때 카메라와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시린 세노 : 냄비는 가족의 과거를 반영하는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영화 내내 그 냄비를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카메라와 충돌하는 장면은 모호하게 처리되길 원했습니다. 과거와 자아, 그리고 다시 찾은 자아가 충돌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고, 그가 자기 정체성을 위해 절도라는 행위까지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면서 충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남웅 : 극중에 나온 배우들을 보면 비전문배우로 보입니다. 어떻게 섭외했고, 현장에서 어떻게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시린 세노 : 비전문배우들이 맞습니다. 작은 섬마을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 섭외한 아이들입니다. 이 영화를 찍을 땐 그곳에 뿌리를 가진 아이들이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찍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도망도 많이 가서 잡아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현장의 분위기가 영화의 정신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남웅 : 제목이 <빅 보이>고, 부모와 주인공을 보면 키가 크고 싶은 욕망들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욕망들이 개인적인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시린 세노 :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모두 다 들어있습니다. 사실 <빅 보이>는 굉장히 간단한 스토리입니다. 아들이 어떤 외모를 갖기를 원하는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필리핀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피부가 하얗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점은 필리핀이 오랜 시간 미국과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일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사회적·정치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허남웅 : 영화가 미국의 TV 프로그램같이 느껴집니다. 일부러 그런 느낌이 들도록 구성을 한 건지 말씀해주세요.

 

시린 세노 :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광고를 영화에 사용하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자라면서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광고가 갖고 있는 소비주의, 물질주의의 속성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허남웅 : 영화에 스텝으로 촬영할 때와 직접 영화를 만드는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 듣고 싶습니다.

 

시린 세노 : 스텝으로 참여하는 것에 비해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 : 영화 초반부에 꼬마 아이가 두 손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의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시린 세노 : 필리핀에 있는 미신 중에, 해 아래에 서 있으면 키가 크고, 피부가 좋아진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허남웅 : 아이들이 서로 따귀를 때리는 장면도 필리핀에서 아이들이 자주 하는 게임인지, 아니면 이 영화의 특별한 장면인 건지도 궁금합니다.

 

시린 세노 :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필리핀에 있는 일종의 놀이 문화라고 합니다. 필리핀 아이들 사이에 있는 마초문화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관객 : 중간에 키가 더 이상 자리지 않는다는 대사가 단순히 집착을 말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고민을 내포하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시린 세노 : 그 부분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키가 크는 약을 먹일 때는 별 생각 없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아이를 일종의 생계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고 난 뒤에는 오히려 이런 아이의 성장이 생계를 위협한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약을 구하는 데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송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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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1:29



김영진(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이 영화가 저희 영화제 측에선 <묻지마 사랑>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만, 원제가 따로 있습니다. 원제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이치이 마사히데(감독) : 원제는 <하코이리무스코노코이 箱入り息子の?>입니다. 직역하면 ‘상자 안에 있는 아들의 사랑’ 이라는 뜻입니다. 제목의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부모 입장에서 귀하게 자란 아들의 사랑이란 의미이고, 또한 ‘무스코’에 동정이란 뜻이 있어서 숫총각의 사랑이란 숨겨진 의미도 있습니다.

 

김영진 : 이번 영화 <묻지마 사랑>은 감독님의 전작들과 다른 톤의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점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이전 작품은 <무방비>라는 영화였습니다. 그때는 여성을 주제로 해서 여성이 갇혀진 곳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반대로 남성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코미디언이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유머러스한 장면을 많이 넣었습니다.

 

김영진 : 히키코모리의 남성과 장애를 가진 여성이 등장한다는 착상은 어디서 출발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원작에서는 부모들끼리 선을 보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영성 캐릭터까지는 원작의 내용과 같습니다. 그 외에 제가 추가한 건 연애이야기라는 측면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켄타로가 자신의 틀을 부수고 나오는 쪽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요즘 세대는 인터넷이나 핸드폰 때문에 직접 보고 듣는 실체험들이 드물어졌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실제로 접하게 되면서 자립을 하게 되는 내용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관객 : 나오코(여자 주인공)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남자주인공은 자립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여자 주인공은 수동적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치이 마사히데 : 나오코는 켄타로의 사고에 대해서 먼저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오코가 음식점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나오코는 혼자 지팡이를 짚고 음식점을 찾아갑니다. 나오코의 자립은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하고 있습니다.

 

관객 : 마지막에 점자로 된 편지를 주고받으며 웃는데요,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그 편지의 내용은 오직 두 사람만 알 수 있다는 게 저의 설정입니다.

 

김영진 : 호시노 겐이라는 배우는 일본에서 어떤 배우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연기도 잘하지만 그보다는 음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와 그는 작은 것들을 포착해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오려고 했는데, 오늘 일본에서 새 앨범이 발표되면서 오지 못해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관객 : 남자주인공이 오락 게임을 하다 자신의 틀에서 나오면서 주인공은 게임을 하지 않게 되는데, 반대로 부모님들은 게임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넣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부모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켄타로를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이와 같은 설정을 넣게 됐습니다. 현실의 부모님들이 게임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진 :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치이 마사히데 : 요시노야에서 켄타로와 나오코가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가는 행인으로 출연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서 나온 것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

 

김영진 : 전주를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인사부탁드립니다.

 

이치이 마사히데 : <묻지마 사랑>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겁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본에서 두 달 뒤 개봉 예정인데, 이번 영화제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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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1:27


강민영(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어떻게 해서 <타협>과 같은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감독) : 50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계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재즈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고, 즉흥 연주를 하듯이 영화를 만듭니다. 굳이 계기를 말하자면 비닐봉지를 쓰고 숨을 쉬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나서입니다. 지금 제 나이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 모자관계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시선이 엇갈려 있습니다. 이 부분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존 조스트 :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리면, 상업 영화의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그렇게 연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는 대화를 할 때 겉으로는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스스로와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면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시선이 엇갈리도록 연출했습니다.

 

관객 : 영화에서 빛을 사용하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부분에 특별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침엽수림에서 인물이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다른 인물들도 중첩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 :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빛은 모두 자연광으로, 따로 조명을 설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침엽수림 장면은 사실 아버지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것이 제 의도였습니다.

 

관객 : 제임스 베닝 감독이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연출에도 일정 부분 참여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 : 30년 정도 제임스를 알았고,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연륜 있는 외모에서 풍기는 모습과 그가 그 나이 그대로 보이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는 연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고, 배우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임스가 나온 장면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제임스가 스프를 먹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전혀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관객 : 할아버지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장면과 그 뒤에 흙이 변하는 장면을 배치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 : 광산이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넣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녹음하는 말인 “난 평생 파괴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라는 말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를 시사하기 위해서 넣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저는 상업영화의 내러티브 방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길이나 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등의 동선을 영화에 넣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에 특별한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를 통해 영화의 톤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영화에 음악이 없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입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길들이 음악과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습니다.

 

관객 : 흙이 변하는 장면과 아버지가 겹쳐지는 프레임에 대해서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존 조스트 : 저는 1996년부터 디지털 비디오를 공부했고,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너 장면을 동시에 중첩시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족 내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정치적인 의미도 담았습니다. 북미 대부분이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해석은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에 제가 따로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자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더 넓은 시각에서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온난화를 가지고 왔고, 자연을 파괴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떤 영화로 느끼길 바라시는 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 :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제가 어떤 의도를 주입시키기 보다는 무의식의 세계에 영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제 목적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관객 : 영화 마지막에 ‘카피 레프트’ 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부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존 조스트 : 카피라이트는 창작물의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저는 <타협>을 제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카피 레프트’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정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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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주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 JIFF 2013.05.09 11:08

2차대전 시기 일본의 모습을 다룬 영화 <전쟁과 한 여자>의 GV가 4월 30일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민감한 주제이고, 최근 정치적인 이슈들도 있는 만큼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성과 반전의 메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진(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이 영화의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가 성과 폭력을 매개로 하면서도 반전영화란 사실입니다. 전쟁 때문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는 사람이 있고, 전쟁을 피해 허무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소설가와 매춘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여주인공입니다. 불감증처럼 자기 욕망을 닫아버렸으면서도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강인하게 버티면서도 가장 순수하기도 합니다. 영화의 관계자들이 다 남성분들인데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상을 창조한 배경에 대한 두 분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아라이 하루히코(시나리오 작가) : 사키쿠치의 소설에서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예쁘다고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인간의 감성이 이럴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이 났을 때, 걱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을 보고 예쁘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측면에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 참전용사 캐릭터는 새디스트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매춘부는 마조이스트 성향을 지니고 잇습니다. 새디즘과 마조이즘을 소재로 채택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테라와키 켄(프로듀서) : 전쟁 때 일본에서 중국으로 간 군인의 수가 백만 명입니다. 전쟁 당시 살인과 같은 행위를 저질렀을 것이고, 돌아왔을 땐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량했던 사람들이 변했을 거라 예상하고 인물을 만들게 됐습니다. 매춘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디즘이나 마조이즘 같은 성향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망가진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 영화의 마지막에 여자가 양키가 아닌 일본의 아이를 낳겠다는 대사를 합니다. 그 부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라이 하루히코 : 여자가 혼혈아가 아닌 일본의 아이를 가진 이유는, 최근에 들어서도 일본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표현해본 것입니다.

 

관객 :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반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테라와키 켄 : 일본은 전쟁 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린 나쁘지 않다, 누군가의 명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이런 말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자국민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데 , 그런 게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군대가 가는 곳은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은 어느 나라든, 어느 것이든 일어나선 안 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게 이 영화를 만든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관객 : 여자배우를 캐스팅할 때 주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테라와키 켄 : 보신 것처럼 배우들이 기뻐하면서 맡을 배역은 아닙니다. 일단 아라이 씨가 쓴 각본대로 영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많은 배우들에게 각본을 읽어달라고 한 뒤, 본인이 원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여주인공은 저와 아라이 씨가 참여한다는 걸 듣자마자 각본을 읽지도 않고 결정한 듯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좋아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좋았고, 그대로 하게 됐습니다.

 

관객 : 일본에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이 영화를 본 일본인들의 반응 중 기억나는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테라와키 켄 : 영화가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나이 많은 남성 관객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여성 관객들이 많이 왔습니다. 여성 관객들에게 무섭지 않은지, 싫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니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표현해주어서 좋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라이 하루히코 : 한 교수님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줬는데, 학생들이 ‘전쟁 중에도 저런가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남녀 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겠죠.

 

관객 : 현재 동아시아의 평화 문제가 여전히 난관에 봉착한 느낌입니다. 각 나라들이 우경화 중이라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고맙고, 앞으로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테라와키 켄 : 최근 여러나라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아까 드린 말씀처럼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는 태도는 주위나라뿐 아니라 일본에도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일본 국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전쟁은 무조건 일어나선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인식해주길 바랍니다.

 

정리 : 2013 지프지기 송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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